한기채 중앙성결교회 목사가 지난 5월 29일 경기도 부천 서울신학대에서 열린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제113년차 총회에서 부총회장에 당선된 뒤 지방회 대의원과 사진을 찍고 있다.
기독인, ‘하나님의 뜻’ 중심으로 이웃에 대한 책임 다해야
책임이란 단어를 나쁜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막상 내게 예상치 못한 책임이 주어지면 부담을 느끼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 대표가 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공동체가 실행하거나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대표로서 책임을 지는 일은 꺼려집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권리는 최대한 누리기를 원하면서도 책임은 가능한 한 적게 지려고 합니다. 책임질 일이 적거나 없는 삶이 더 편하고 좋은 삶일까요.
의미 있는 삶의 조건우리가 축구 시합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공이 잘 오지 않는 외진 위치로만 뛰어다니며 실수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려는 선수가 있다면, 그는 선수 자격도 없을뿐더러 축구에서 재미와 보람조차 찾지 못할 것입니다.인생에서도 어느 정도의 책임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줍니다. 책임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건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 받게 될 비판이나 비난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본래 우리 인생은 책임의 크기에 따라 사람의 역량도, 영향력도 달라집니다. 큰 사람은 큰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비판과 비난이 두려워 책임의 자리를 회피한다면, 성공과 영광도 피해갈 것입니다.‘고통 없이 얻는 것이 없듯이’(no pain, no gain), 책임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자녀를 못되게 키우려면 책임감 없는 아이로 키우면 됩니다. 윌리엄 맥레이븐 제독은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침대 정돈부터 똑바로 하라”고 역설합니다. 어질러 놓은 침대와 옷, 신발 같은 사소한 일부터 부모가 정리해주면 자녀는 책임성 없는 아이로 자랄 것입니다. 책임 의식은 ‘사람을 사람 되게’ 만들어줍니다.능력 있는 이에게 주어지는 선물부모의 부탁을 받을 때나 직장 상사의 지시를 들을 때, 어떤 직책이나 자격을 부여받았을 때 우리에겐 책임이 주어집니다. 또 지식이 늘고 인격적으로 성숙해짐에 따라 감당해야 할 책임의 무게와 종류는 늘어납니다. 어릴 때는 나와 무관하던 일이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서 내 책임이 되는 원리와 같습니다.책임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10살짜리 아이에게 자동차 열쇠를 주지 않습니다. 그 아이가 자동차 운전하는 것을 얼마나 원하는지, 혹은 부모가 그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직 운전면허증을 소지하고 안전하게 운전할 능력이 있느냐가 중요할 뿐입니다. 책임은 의욕과 자신감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있을 때만 주어집니다. 책임을 맡는다는 건 우리가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위치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한편 책임에 따른 특권이나 명예에 집착해 책임의 무게를 망각하는 자세도 위험합니다. 자신감을 갖고 책임을 감당하면서도, 특권의식으로 그 권한을 남용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책임 있는 자리에 서는 자는 자신의 언행과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깊이 고민하며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책임의 자리는 자신이 쟁취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가 우리에게 부여해 준 것이라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합니다.소명과 연결된 성품‘선한 목자 비유’(요 10장)에서 예수님은 자신과 열두 제자, 나아가 자신과 믿는 자의 관계를 목자와 양으로 비유합니다. 선한 목자는 일신의 안위를 위해 양을 버리고 도망치는 삯꾼과 다릅니다. 양을 위해서라면 자기 목숨까지 걸고 책임을 다합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대로 하나님 아버지께 받은 소명에 대한 책임을 십자가로 담당했습니다. 반면 에덴동산의 책임을 맡았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뜻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후, 죄를 전가하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입니다. 로마 총독이자 재판장인 빌라도도 무죄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며 “이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그러나 사도신경에 거론된 빌라도는 지금까지도 정죄되고 있습니다.기독교인의 책임은 하나님이 주신 소명(calling)과 연관 지어 이해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꿈과 희망은 ‘나’를 중심으로 계획한 바람과 목표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소명은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소명감, 책임감을 가진 사람은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소명감을 통해 책임감을 갖고 일하는 자를 기뻐하며 책임을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을 줍니다. 작은 책임을 완수하면 더 큰 책임을 맡을 수 있도록 더 큰 능력과 기회를 줍니다. 충성스러운 책임감은 우리 그릇이 커지는 통로입니다.“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 책임이란 기독교인이 성장함에 따라 반드시 따르는 것이며,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완수해야 할 소중한 성품입니다. 기독교인이 자기 삶의 자리에서 성속(聖俗) 간에 책임을 다할 때 이 세상은 하나님 보기에도, 우리가 살아가기에도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출처] -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