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7편은 답관체(踏冠體) 구조, 즉 두 개의 절(1~2, 3~4, 5-6, …)을 한 단위로, 각 단위의 첫 글자가 히브리어에서 ‘ㄱㄴㄷ 순’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는 암기하기 쉽도록 고안된 방식인데, 덕분에 시상의 연결은 느슨하고 동일한 주제가 반복된 경향을 보입니다. 이 시는 지혜시로서 잠언과 유사하며, 하나님께서 의인을 돌보시고 악인을 멸망시키실 것이라는 교훈을 줍니다.
① 불평하지 말라(1,7절): 시인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불평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윌 보웬 목사는 “인간이 겪는 모든 불행의 뿌리에는 불평이 있다”고 하면서 ‘불평 없는 세상 만들기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만연한 불평을 근절하자는 의식개선 프로그램입니다. 부정적인 말은 부정적인 생각을, 그리고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스라엘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직행하지 못하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한 것은 불평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불평(complain)보다는 칭찬(compliment)을, 불평보다는 감사를 해야 합니다. ②시기하지 말라(1절): 악인의 형통을 시기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풀과 같이, 푸른 채소 같이 속히 쇠잔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성공은 표피적이고 뿌리가 없습니다. ‘신 포도를 먹은 여우’라는 이솝 우화처럼, 겉보기와 실상은 전연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불평하고 시기하는 이유는 물질적으로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대통령 조르주 퐁피두는 “삶의 질”이라는 연설에서 중산층에 대한 정의를 “외국어 하나, 악기 하나, 스포츠 하나, 자랑할 요리, 남을 돕는 봉사 활동”으로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배기량 2000cc 이상의 자동차, 1억 원 이상의 현금잔고, 빚 없는 30평대의 아파트, 월급 500만 원, 연 1회 해외여행” 등으로 규정합니다. 상대적인 박탈감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질적이고 외부적인 조건을 충족한다고 해서 과연 행복할까요? ③ 여호와를 기뻐하라(4절):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 소원을 들어 주시면 기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먼저 여호와를 기뻐하면 하나님께서 소원을 들어 주신다고 말합니다. 우리 본성과 다릅니다. 사실 ‘기쁨’(카라)과 ‘은혜’(카리스)와 ‘감사’(유카리스트, 모두 헬라어 단어)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먼저 하나님을 기뻐하십시오. 그리고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기뻐하기로 ‘선택’하십시오. 항상 주 안에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밝은 표정으로 예배드리십시오. ④여호와께 맡기고 그를 의지하라(3, 5절): 독수리가 태양을 응시할 때 힘을 얻듯 우리는 목표에 집중할 때, 하나님께 시선을 맞출 때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수 있었던 비결은 예수님만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습니다. ⑤온유한 자가 되라(11절): 이삭은 온유하였기에 싸움을 피했고 르호봇(“하나님이 내 지경을 넓혀 주시리라”)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합니다. 화가 나는 상황도 가만히 보면 저주가 아닌 축복일 경우가 있습니다. 화복(禍福)의 결정은 에티오피아 소말리족의 바보 잭처럼 그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 결국 악인들이 일시적으로 성공하고 번영하고 부유해진다고 해도 시기하고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시 37:16)고, 주의 복을 받은 자들,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만이 땅을 차지하되 영원히 기업으로 삼을 것입니다.
이 시편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의 길 대신 하나님의 길을, 악인의 길 대신 선인의 길을 택할 것을 교훈합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 1:6). 그때그때는 어려웠고 기도가 응답되지 않은 것 같지만, 5년 혹은 10년을 돌이켜보면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나의 기도나 기대보다 더 훌륭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항상 의지하시고, 잠잠히 의의 길을 걷는 한 해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