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열심당원이 된 제자: 유다와 시몬
눅6:12-16, 요14:21-24
예수님의 12제자 중에는 소명 받을 때와 따를 때의 언행이 상세히 기록된 제자도 있지만, 이름만 알려진 제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께서 철야기도 후에 뽑은 자들로서, 하나님께 잘 알려진 유명한 자입니다. ▶ 12명
의 제자 중에는 열심당원도 있었습니다. ①작은 야고보, ②야고보의 아들 유다, ③셀롯인 시몬, ④가룟 유다 등 4
명입니다. 그중에 다대오의 아들 유다와 셀롯인 시몬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유다(≠가룟 유다)는 “다대오,” “야고보의 아들,” 혹은 “레비어스”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시몬(≠시몬 베드로)은
“가나안인 시몬,” “셀롯인 시몬”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유대교 내부에는 5가지 운동이 있었습니다. ①바리
새파: 자타가 “구별된 자들”로 부른 그들은, 율법에 대한 문자적 엄수를 고집했고 ‘참된 이스라엘’은 자신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②사두개파: 제사장 출신들로 유대 귀족을 형성하고 있었고, 자유로운 종교적 입장과 현상유지적
보수파였습니다. ③에세네파: 금욕적인 생활로 하나님 나라를 대망했고, 새로운 언약 공동체라고 자부했습니다.
④헤롯당: 로마 정권의 앞잡이로서, 괴뢰정부에 참여했는데 권력과 혜택을 누린 자들이었습니다. ⑤열심당: 하나
님의 진노의 대행자로 자처하고 폭력과 테러를 통해 유다를 로마로부터 해방시키려는 극렬 민족주의자들이었습
니다. 하나님 외에 어떤 왕도 없고, 성전 세금 외에는 어떤 세금도 거부했고, 열심당원 외에는 친구도 없는 자였습
니다. ▶ 열심당 운동은 알렉산더 대왕 사후 넷으로 나뉜 그리스 왕국 중 하나인 셀류키드 왕국의 정치적, 종교적
탄압에 맞서 분연히 일어난 마카비 독립운동의 전통을 따르고 있습니다. 유다 마카비어스와 그의 가족들은 안디
오쿠스4세와 항쟁한 끝에 유다 독립을 성취했습니다(하누카). 이후 유다의 마카비 왕조는 강성한 로마의 지배에
굴복했지만 독립을 갈구하는 움직임이 열심당운동으로 나타났습니다. AD6~7년에는 로마의 세금부과에 맞서
‘갈릴리의 유다’가 봉기했다 실패했고, AD67년에 재차 봉기했지만 이로 인해 예루살렘과 성전은 파괴되고, 열심
당원은 마사다 요새에서 옥쇄했습니다(AD74년). ▶열심당원들은 애국애족적인 마음으로 목숨을 버릴 수 있는 투
사였습니다. 열심당에는 5가지 파가 있었는데 경쟁적으로 혹은 협력해서 로마에 대항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는 세리 마태와 같은 친로마적인 사람과 셀롯인 시몬과 같은 열심당원이 있었는데, 예수님은 극과 극의 사람
을 통합할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 예수님에게는 열심당원을 끄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성전청결사건에서 보이는
예수님의 의로움과 개혁적인 행동, 불의의 사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용기, 병들고 소외되고 억눌린 사람에 대한
관심, 갈릴리 민중을 위한 기적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허위의식을 폭로한 것 등입니다. 한편 원수 사랑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는 세금 발언, 예수님의 나라는 지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씀 등은 그들에게 큰 실
망을 안겼을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배신도 이런 정황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열심당원 유다와
시몬은 예수님의 뜻에 머물지 못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께 왜 세상에 드러내시지 않는지’ 반문했고, 셀롯 시몬
은 칼을 품에 품었습니다.
성령님께서 열심당원들을 변화시켰습니다. 지상적 메시아 왕국을 기다리지 말고 성령의 권능을 받아 부활의 증
인이 되라 하셨습니다(행1:8). 마가의 다락방에 “마음을 같이하여”(=호모쑤마돈) 기도했습니다. ‘호모쑤마돈’은
“같은 마음으로”라는 뜻이지만, 어원적으로는 “같은”(호모-) “열정으로”(-쑤마돈)라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늘의 열정을 공급받았고 기존의 열정은 새로워졌으며, 그 열정의 방향이 올바르게 잡혔습니다. 민족/땅/유
대를 향한 열심이 복음/하나님나라/전 세계를 향한 열정으로 불타올랐습니다. 열정 없는 것도 문제지만 기도로 성
화되지 않은 열정은 자신을 태울 뿐입니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열심당원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