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함정을 피하라
- 관리자
- 조회 : 3539
- 2014.04.04 오후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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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을 피하라
- 201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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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을 피하라
느헤미야 6:1-9
헨리 블랙커비는 <영적 리더십>에서 리더십의 10대 함정을 “교만, 성적인 죄, 냉소, 탐욕, 정신적 나태, 과민성, 영적 무기력, 가정 소홀, 행정 부주의, 장기집권”으로 보았습니다. 저는 분주함, 두려움, 분노, 타협, 교만, 비판, 인정 욕구 같은 것으로 봅니다. 지도자는 이런 함정을 주의해서 잘 피해가고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느헤미야에게서 이런 것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성벽을 거의 완공하여 성문만 달면 되는 때에 느헤미야에 대한 음모가 진행됩니다.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이 느헤미야에게 오노 평지에서 만나자고 제의했습니다. 오노평지는 아스돗과 사마리아의 중립지역, 예루살렘 북서쪽 25km 지점입니다. 화해의 손짓, 느닷없는 평화회담 제의를 하는 것 같습니다. 네 차례 회유를 했는데, 그것을 빌미로 공사를 중지시키고 느헤미야를 암살하려는 음모가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지속적 유혹에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고 거듭 거절했습니다. 불순한 동기를 분별해 내어 지혜롭게 피해갔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수행할 때 우리의 관심을 돌리려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변적인 일에 너무 바쁩니다. 하지만 그런 유혹들에 대해서 단호히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여 소중한 것부터 하게 된다면 피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기 있는 일, 즐거운 일, 긴급한 일부터 하게 됩니다. 긴급하다고 다 중요한 일은 아닙니다. ▶네 번의 시도가 실패하자 이번에는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보냈습니다. 밀봉하지 않은 편지는 누구나 읽으라고 하는 편지인데 그 안에는 근거 없는 흑색선전이 들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유다에서 스스로 왕이 되어 반란을 일으키려한다는 말을 지어 페르시아 왕에게 고발하겠다고 협박한 것입니다. 모함은 변호하고 토론한다고 될 일이 아니므로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지도자는 모함과 비판을 처리하는 기술을 익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는 반드시 비판자가 있다는 점, 악마처럼 일해도 천사처럼 높이고, 천사처럼 일해도 악마처럼 비난하는 자들이 있으며, “비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 존재도 되지 않으면 쉽게 피할 수 있다”(아리스토텔레스)고 한 말을 유념해야 합니다. 지도자에게 비판은 필수과목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공생애 기간 중 비난을 당하셨고 영국에서 노예제도를 폐지하려던 윌리엄 윌버포스도 많은 모함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다만 건설적인 비판과 파괴적인 비판은 구분해야 합니다. 동기를 파악하고 그 말을 누가 했는지를 살펴보면 됩니다. 매는 까마귀 떼에게 공격을 받으면 반격하는 대신 더 높이 올라간다고 하는데 그러면 까마귀 떼가 따라오지 못합니다. 비판을 받거든 더 높이 비상하십시오. 느헤미야는 중상모략에 대해 “네가 말한 바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라고 하면서 용기 있고 과단성 있게 물리쳤습니다. ▶원수들은 이제 전술을 바꾸어 유대인 제사장이요 선지자인 스마야를 뇌물로 매수하여 느헤미야에게 거짓 예언을 하게 했습니다. 적들이 밤에 죽이러 올 터이니 성소에 들어가서 문을 닫자는 것. 얼핏 느헤미야를 위한 것 같지만 그 속에는 느헤미야를 겁쟁이로 만들고 제사장만이 출입할 수 있는 성소에 피신하게 함으로써 제의적 율법을 어겨 백성의 신망을 잃게 하려는 술책이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느헤미야는 영적으로 거짓을 분별해낼 수 있었고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이세벨의 협박을 받고 좌절하여 도망을 친 엘리야와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자기 보호 본능을 발동할 만한 상황에서도 담력과 용기로 물리쳤습니다. 지도자는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두려움은 믿음의 반대이며 믿음이 부족할 때 생깁니다. ▶이 모든 반대와 위협을 물리치고 느헤미야와 백성은 52일 만에 성벽을 완공했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이요 느헤미야에게 탁월한 영적 리더십을 주신 결과였습니다. 이제 영적으로 깨어 내적인 재건을 해야 할 때가 도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