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로 가는 길
사도행전 28:16-23
3차 전도여행의 귀로에서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에 가면 환난과 결박을 당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에베소교
회 장로들을 상대로 한 고별설교에서 처음으로 그 사실을 알렸고, 두로교회 교인들은 바울을 말리기도 했습니다.
가이사랴에서는 아가보 선지자가 행위예언을 통해 바울의 체포를 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주 예수의 이
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한 상태였습니다. 성령님의 예언을 ‘피하라’가 아
닌, ‘준비하라’ ‘각오하라’로 받아들였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는 모습입니다. ▶ 바울은 유대인들
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에서 붙들려 돌에 맞아 죽을 뻔했는데 로마의 천부장에 의해 목숨을 건지게 되었습니다. 하
지만 산헤드린에서 증언하다 다시 찢길 뻔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위로하시면서 그가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할 것을 계시하셨습니다.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한 유대인들이 생겼고, 바울의 생
질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천부장은 바울을 가이사랴의 총독에게 호송해 보냈습니다. 며칠 후 내려온 유대인
대제사장과 변호사인 더둘로는 바울을 “전염병 같은 사람”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 “나사렛 이단의 괴
수”라고 하면서 터무니없이 정죄했지만 벨릭스 총독은 처결을 미루고 2년 동안 감금했습니다. ▶ 2년 후 벨릭스 후
임으로 베스도가 부임하자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처리하도록 바울의 신병을 요구하였고, 이에 바울은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게 되었습니다. 문안 인사차 방문한 헤롯 아그립바 1세와 버니게가 함께 심리한 결과 “바울이 가
이사에게 호소하지 않았다면 풀려날 뻔”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바울이 사형이나 결박 받을 만한 죄가 없다는 결론
에 도달한 것입니다.
바울이 황제에게 상소했기 때문에 로마로 보내기로 하고 바울과 다른 죄수 몇 명을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
에게 맡겼습니다.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누가가 동행했습니다. 바울의 항해 일지는 정확한 지형, 지명,
기상, 시간 등이 놀랍도록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호송되어 갔지만 복음은 매이지 않
았고 하나님께서 바울과 함께 하심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바울은 과동(過冬)하기 위해서 더 넓은
뵈닉스 항구로 가자는 선장과 선주의 의견에 반대하였지만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듣고 항해하다 유라굴
로 광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구원의 여망이 사라졌을 때 바울이 나서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전하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실제로 276명의 탑승자는 무사했고 화물에만 피해가 갔을 뿐이었습니다. 바울은 로마 황제 앞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증언해야 할 사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명이 있는 자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 멜리데 섬에 도
착해서는 땔감을 불에 넣다가 독사가 바울의 팔에 매달렸습니다. 원주민들은 바울이 범죄자로서 정의의 심판을
피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죽지 않자 그가 신이라고 고쳐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섬의 추장인 보블리오의
아버지가 열병과 이질로 고생하는 것을 안수하여 낫게 해주었고 그 덕분으로 후한 대접을 받고 섬을 나올 수 있었
습니다. 오늘날도 성령님은 믿는 자에게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바울은 마침내 200만 명이 사는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믿는 형제들이 40마일이나 되는 삼관까지 와서 영접했습
니다. 바울은 이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었습니다. 바울은 2년 동안 셋집에 감금되어
있었지만 자유롭게 복음을 전했고 빌립보서,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등 옥중 서신을 집필했습니다. 초대교
회는 바울과 베드로가 한 날에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믿고 있지만, 누가는 사도행전의 결말을 바울이 “주 예수 그
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쳤다”고 하면서 오픈 엔딩(open ending) 처리합니다. 바로 우리
가 29장을 써가야 한다는 암시를 주고 있습니다. ▶바울 순교 후 250년 뒤에 기독교는 공인되었고, 후에 국교가 되
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이 제국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