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을 빌리라
열왕기하 4:1-7
엘리사는 스승인 엘리야와는 사역의 성격에서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엘리야가 은둔형으로 홀로 사역을 전개하
였고 대개 전투적인 색채를 띤 반면, 엘리사는 제자 공동체를 위해 사역을 벌였고 치유와 회복을 이루었습니다.
따라서 엘리야는 남성적 사역, 엘리사는 여성적(모성적) 사역입니다. 엘리사에게 찾아온 한 여인을 통해 하나님
이 믿는 자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 한 명이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과부가 된 그 여인은 두 아들만 있었습니다. 남편이
남긴 빚 때문에 채주가 찾아와 두 아들을 종으로 삼겠다고 위협했다는 것입니다. 삶을 규모 없이 운영해서 생기는
빈곤도 있지만, 검소하고 절약해서 살아도 생기는 외적인 빈곤이 있습니다. 과부의 남편이 여호와를 경외했지만
가족들에게 남긴 것은 이런 외적인 빈곤이었습니다. 주의 종들로 부름 받은 사람들(개척교회 사역자, 선교사, 홀
사모, 그 자녀들)은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빈곤에 떨어지기 쉽습니다. 당시 사회는 악덕 사채업자가 활개를 쳤고
인신매매가 가능한 불의한 사회구조였습니다. ▶ 여인은 엘리사를 향해서 부르짖었습니다. 불의함과 억울함에서
그녀는 간절하고 절박하고 슬프게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인 엘리사에게 부르짖음은 곧 하나님을 향
한 기도에 해당합니다. 엘리사는 과부의 부르짖음에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돈이 많아서 대납해줄 수 있을까
요? 채주를 찾아가 대신 통사정해야 할까요? 엘리사는 그녀에게 질문했습니다. “네 집에 무엇이 있느냐?” 이 질
문에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라고 답합니다. 여인은 ‘없음’에 강조를 두었지만 엘
리사의 관심은 현재 여인에게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없는 것을 요구하
시는 것이 아니라 갖고 있는 통해 역사하시려는 것입니다. 오병이어를 일으키기 직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
게 무엇이 있느냐고 물으셨지만, 안드레는 아이가 갖고 있는 것을 제시하면서도 “이것이 저 많은 군중에게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라고 회의적으로 말했습니다. 적은 것이라도 순종하면 크게 역사하게 되고, 적은 것이라도
믿음으로 하면 위대하게 되는 법입니다. ▶ 엘리사는 물질 이적이 있을 것임을 암시하면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많이 빌리라고 합니다. 여인은 그 말에 따라 이웃들에게 그릇을 빌린 뒤에 두 아들과 함
께 집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름을 채워 넣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물질의 이적은 출애굽의 광야에서는 만나의 형태
로, 엘리야는 사렙다 과부의 주방에서, 가나 혼인잔치에서는 물이 포도주로, 들판에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나
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그리고 능력이 과부에게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여인은 그 기름으로 빚을
갚고 남는 것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인은 기뻐하면서도 섭섭했을 것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많
이 빈 그릇을 빌릴 걸….’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기대’하는 일입니다. 기억이 과거에 베푸신 은혜를 회상하는 것이라면
기대는 하나님께서 지금 다시 베푸실 은혜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기대가 없다면 우리는 더 이상 살 의지도 없고
열망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기대가 없었기에 예수님도 나사렛에서는 기적을 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베데스
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신 이유도 만성의욕상실증에 걸려 기대가 소멸된 것
인지 묻는 것입니다. ‘피그말리온 효과’처럼 우리가 기대하면 기대한 대로 얻게 됩니다. 윌리엄 캐리는 “하나님으
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고 요청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많은 것을 기대할 것을 원하십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하나님을 기대해야 합니다. ▶ 빚을 죄로 해석할 수 있다면,
인간은 죄로 인해 무력한 상태라고 해야 합니다. 하지만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그 죄를 탕감하실 뿐 아니라 더 큰
은혜도 베푸십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통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