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시는 제자 요한
눅 9:49-50, 요 19:26-27
야고보의 형제 요한은 갈릴리 출신으로 베드로와 함께 어부 일을 동업했던 사람입니다. 영적인 관심이 많던 그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었는데, 야고보와 함께 ‘보아너게’ 즉 ‘우레의 아들’로 불렸습니다. 사마리아를 통과하고자
하는 예수님 일행을 사마리아 사람들이 막자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기를 원하시나이
까?”라면서 보복의지를 불태웠습니다. 두 형제가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의 영광중에 한 사람은 좌편에, 한 사
람은 우편에 앉게 해 달라고 하면서 베드로를 따돌리려는 경쟁심과 질투심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10대 후반부터
예수님을 따른 요한은 예수님의 직제자 중 가장 오랫동안 생존했고, 가장 오래 사역했으며(70년), 영어권에서 제
일 인기 있는 이름John의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변화된 것입니다.
본문은 변화되지 못한 요한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들을 제지했다고 예
수님께 자랑했습니다. 그들 중의 한 명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권능 가운데 귀신을 쫓아
병자의 고통을 없애 주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선행을 막을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기득권을 보호하려는 마
음, 집단 이기주의, 배타주의, 시기심의 병폐만이 드러나 보입니다. 이스라엘 장로 70인이 회막 앞에서 여호와의
신을 받고 예언할 때, 엘닷과 메닷도 진중에서 여호와의 신을 받고 예언했습니다. 이를 금하라는 여호수아의 제
안에 대해 모세는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민 11:29)고 책망했습니다. 속 좁음과 분파주의, 배타성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
에게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말 없는 중간층을 끌어안는 포용력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해도 온전해질 때까지는 실수투성이, 교만 덩어리요 성급하게 판단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요한은 예수님과 함께 깊은 교제를 나누는 가운데 삶과 인격이 변화되었습니다. 변화는 교회 출석 연륜이
나 직분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과 긴밀한 교제로 “가장 이상적인 제자의 표상”이요 “성령을 가장
많이 닮은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특히 예수님께 받은 사랑의 크기 때문입니다. 요한을 변화시킨 사건들을 꼽으
라면 변화산 체험, 최후의 만찬, 겟세마네 동행 등입니다. 특히 최후의 만찬 때는 제자의 배신을 예언하시는 예수
님의 품에 누워 그의 두근거림까지도 느꼈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심정을 느꼈을 것입니다. 요한이야말로 예
수님과 마지막 순간을 함께 했던 제자였습니다. 죽음을 호언장담한 베드로는 도망쳤지만 요한은 십자가에까지
갔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들을 알고 있었고, 옆구리에 창을 받으셨을 때 “물과 피”가 나온 것을 증언할 수
있고, 장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기록된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요한은 마음으로 십자가를 졌을 것
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제일 잘 이해했고 그에게서 받은 사랑으로 예수님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은 요한에게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맡겼는데 요한은 마리아를 임종 시까지 봉양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요한의 사랑은 부활의 아침에 무덤으로 제일 빨리 뛰어간 것, 그의 부활을 믿은 것, 디베랴 바다에서 부활하신 예
수님을 제일 먼저 알아본 것으로 증명됩니다. 예수님과의 깊은 교제, 특히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그를 변
화시켰습니다!
▶ 요한은 요한복음, 요한일이삼서의 서신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과
거 행적을 통해 믿음을 촉구하고, 서신서는 현재 교회의 삶을 통해 사랑을 역설하며, 계시록은 미래의 세계 전망
을 통해 소망을 고취시켰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이 저작의 동기였습니다. 또한 요한복음에서는 “사랑하시는
자” “또 다른 제자”로 묘사하여 자신을 감추었습니다. 특히 요한은 ‘사랑의 사도’ ‘살아 있는 순교자’가 되었습니
다. 예수님과의 깊은 교제는 여러분도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