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둘 중의 하나: 가룟 유다
마26:14-16, 47-50, 27:3-10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은 후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를 유념합니다. 장례식에 가면 망자에
대한 평가를 들을 수 있는데, 애석하게도 인간은 타인의 죽음만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타인
의 삶과 죽음을 자신을 위한 교훈이나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사명계획서를 쓰고 좌우로 요
동치지 말고 살아가야 합니다. 인간은 퇴장료 인생입니다. ▶ 성경에는 가룟 유다에 대한 평가가 많
습니다. “나지 않았으면 제게 좋을 뻔 하였도다” “멸망의 자식” “열둘 중의 하나.” 유다는 남부 게리
욧 출신으로, 전직 세리인 마태를 제치고 사도단의 회계를 맡은 사람입니다. 유다독립전쟁의 영웅
‘유다 마카비우스’를 본 따 붙여진 이름인 듯한데, 그만큼 재능 있고 열정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
“열둘 중의 하나”라는 표현은 의미심장합니다. 다빈치는 시실리성당의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 가
룟 유다 모델을 찾았는데 뜻밖에도 어릴 적에 예수님 모델을 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누구
라도 예수와 가룟 유다, 천사와 악마, 천국과 지옥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
러므로 자기의 연약함을 인정하면서, 항상 건전한 자기 의심, 자기 성찰을 수행해야 합니다. “주여
나입니까?”
<예수님을 배반한 이유> ① 탐욕: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입니다. 가룟 유다는 사도단의 재정
을 맡아 보면서 공금을 유용했습니다. 좀도둑이 커서 큰 도둑이 된다고, 스승인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넘겼습니다. 피 묻은 돈은 불안, 슬픔, 재앙을 몰고 왔습니다. ② 기대가 실망으로: 유다가 열심
당원 출신이라면, 극렬민족주의자로서 로마민족을 몰아내려는 애국자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님을 추종할수록 신학적 견해와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실망으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그는
12명의 제자 중 유일하게 변화되지 못했고, 자기중심적 신앙을 지니고 있다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
게 되었습니다. ③ 예수님을 자극: 유다는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과 그의 능력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
지만 그것은 유대민족 해방을 위해서 군사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팔 생
각이 아니라, 미적거리는 예수님을 자극하여 민족 해방을 위한 투사의 길로 가게 해서 메시아왕국
을 건설하려 했을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행위> ① 배신자의 바겐세일: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뒤 베다니의 나병환자 시몬의 집
에 머무실 때, 마리아는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고,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마리아
와 유다는 헌신과 배신, 이상적인 제자상과 패역한 제자상, 예수님을 섬김의 대상으로 보느냐 이용
의 대상으로 보느냐를 극명하게 대조시킵니다. 유다는 이 일 외에도 예수님을 은 삼십에 제사장들
에게 팔았는데 그 비용은 소가 남녀종을 받아 죽였을 때 치루는 값입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하찮게
생각한 모양입니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는 부귀영화를 위해 영혼을 거는 것조차도 어리석다고
증언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이 값에 팔아넘기는 행위는 몰지각한 행위입니다. ② 배신자
의 키스: “양의 탈을 쓴 이리를 조심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유다가 그 자였습니다. 어둠
가운데 예수님을 정확히 지목하여 체포할 수 있게 치밀하게 계획한 것이 키스입니다. 우정의 키스
를 배신의 키스로 만들었습니다. 배신은 사랑과 신뢰를 받는 자가 그것을 이용해서 해를 끼치는 행
위로, 단테의 <신곡>에서는 지옥의 가장 밑에 떨어져 루시퍼와 함께 고난 받는 중죄입니다. ③ 배신
자의 최후: 예수님은 유다에게 여러 번 경고하셨습니다. 발을 씻기실 때도,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도.
하지만 끝내 회개의 부름을 거절했습니다. 유다라는 명예의 이름을 만고의 배신자의 이름, 수치스
런 이름으로 만들었습니다. 죄로 얻은 것은 싫어하게 되는데 은 삼십을 돌려줄 때 자신도 대제사장
들에게 배신을 당하여 목매어 자살했습니다. 그리고 “제 곳”으로 갔습니다. ▶ 열둘 중의 하나였던 가
룟 유다, 우리도 매순간 스스로를 성찰하여 은혜와 진리 위에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