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상, 자기의 상
마태복음 6:1-8. 16-18
예수님을 믿으면 여러 모로 좋습니다. 제일 큰 유익은 영혼이 구원받아 천국에 갑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에는 상급도 있습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 5:12). 본문에서는 두 종류의 상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자기의 상”
“아버지의 상.” 자기의 상은 자기 스스로 취하는 상으로, 대개 세상 사람들이 주어 받는 상입니다. 반면 아버지의 상은 하늘 아버지께서 내세에 주실 상급입니다.
신앙생활은 세상에서의 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상을 구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은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께만 맞추어져 있어야 합니다(싱글 포커스). 오직 주님만 바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삶의 무대에 비중 있는 청중이십니다.
유대인에게는 세 가지 의로운 행동이 있었습니다. “구제” “기도” “금식”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의로운 행위라고 해도 어떤 동기와 목적을 지니는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집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마 6:1).
사람의 인정과 칭찬, 명예를 얻기 위해서 이런 것들을 해서는 안 됩니다.
돈을 들여 인정과 명예를 사는 매수행위가 됩니다. 이것은 ‘사역’을 ‘사업’으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사업이라도 사역으로 만들어야 하는 존재인데 말입니다.
우리의 모든 선행과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위여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아름다운 것들을 왜곡했습니다.
악은 원래 선한 것을 왜곡할 때 생겨납니다. 사탄도 선한 것을 왜곡하도록 조장합니다.
선한 일을 잘못된 방식으로 하게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위선자로 책망 받습니다. 가면을 쓰고 연극을 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로 인해 의로운 행위가 나쁜 평판을 받고 아예 하지 못할 것으로 매도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의 말씀을 통해 바른 구제, 바른 기도, 바른 금식의 방법을 제시하십니다. ?
바른 구제: “오른손이 하는 일이 왼손이 모르게 하라.” 제일 좋은 구제는 자신이 행한 구제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양과 염소의 구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오른쪽에 서게 된 양들은 주님께서 칭찬하시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한 일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작은 자 하나에게 한 일이 바로 내게 한 일이다”라고 말씀하실 때에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구제는 생색을 내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 하신 것으로 겸손히 인정해야 합니다. 또한 구제는 옆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고넬료 백부장의 이야기를 통해 기도뿐만 아니라 구제도 상달되어 하나님의 기억하신 바가 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
바른 기도
기도는 신자의 특권이자 의무입니다. 하지만 바르게 기도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교만하게 기도했습니다. 세리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우월의식을 드러냈습니다. 회개도, 간구도, 감사도, 겸비도 없는 기도였고,
자아가 부풀어 오르고 영혼은 오그라드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은밀하게 계신 아버지”께 은밀히 기도해야 합니다. 골방의 기도뿐만 아니라,
우리는 수시로 기도하고, 삶 전체로 기도하고, 진지하게 대화하고,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3인칭에서 2인칭으로) 를 맺어야 합니다.
이방인처럼 중언부언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바른 금식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 금식했습니다.
하지만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라마단 한 달 동안 이슬람교도들은 낮에는 금식하고 하루 5번씩 기도합니다.
하지만 저녁에는보상심리로 폭식 · 과식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자신을 과시하려는 금식, 억지 금식은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금식할 때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음으로써 금식하고 있다는 것을 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금식을 통해 육성을 죽이고 자신을 훈련함으로써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품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금식하면서 기도하고, 금식하면서 구제해야 합니다.
▶ 올바른 구제, 올바른 기도, 올바른 금식으로 큰 상급을 쌓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