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에서
사도행전 16:19-34
1차 선교여행 후 바울은 안디옥교회에 오래 머물면서 사역했습니다. 서신으로 목회하기도 했고(ex.
갈라디아서) 이방인 선교정책을 결정한 예루살렘공의회에도 참여했습니다(15장). 바울이 이미 세
우진 교회를 견고하게 하고자 2차 선교여행을 떠났는데, 그의 의중과 상충되는 하나님의 섭리가 많
았습니다. ▶ 마가요한은 1차 여행 때 버가에서 선교팀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는데 그를 데려
가는 문제로 바울과 바나바가 심히 다투고 갈라섰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 섬으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대동하고 선교 여정에 올랐습니다. 이는 바울의 뜻이 아니었는데 신앙생활의
본질은 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 때가 주후 50년 봄일 것입
니다. ▶ 바울은 시리아의 안디옥을 떠나 시리안 관문과 길리기아 지방을 통과하여 갈라디아 지방에
도착했습니다.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안 안디옥으로 가면서 반가운 얼굴을 재회했습니
다. 특히 루스드라에서는 21세로 어엿한 성년이요, 바울의 영적 아들, 신실한 동역자가 될 디모데를
영입했습니다. 비시디안 안디옥 이후 바울은 선교 행로를 놓고 고민했습니다. 서쪽 아시아 속주로
가려 했지만 성령께서 막으셔서 북쪽으로 발길을 돌려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다녔습니다. 비
두니아에 들어가려 애썼지만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아서 드로아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에서 바울
은 “마게도냐로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는 어떤 사람의 환상을 봅니다. 주님의 뜻이라고 본 그들은
즉시 유럽지역(마게도냐 지방)을 향해 떠났습니다. 이와 같이 2차 전도여행 중 3번에 걸쳐 주님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바울이 계획하고 바라던 선교일정과 방향이 송두리째 변경되었습니다.
드로아에서부터 “우리”라는 말이 나오는데, 누가가 이때부터 합류한 모양입니다. 선교팀은 바울, 실
라, 디모데, 누가로 구성되게 되었습니다. 누가는 인근 버가모에 있던 아스클레피온 병원에 다녀오
던 길이었을 것입니다. 드로아에서 에게해를 항해하여 마게도냐 지방에 도착했습니다. 네압볼리에
도착한 그들은 에그나티아 가도를 따라 16km 걸어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인 빌립보로 들어갔습니
다. 회당이 없던 연고로 안식일에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찾다가 간지테스 강가에 있던 여인들을
만나 말씀을 전했습니다. 주님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받아들이게 하셨습니다. 루
디아는 값비싼 자주옷감이 특산품인 소아시아의 두아디라성 출신으로, 멸망한 왕국 루디아의 이름
을 따라 ‘루디아의 여인’으로 불린 사람이었습니다.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고 전도자들을 강권하여
머물게 했습니다. ▶ 다음 안식일에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이 따라 오면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면서 괴롭게 했습니다. 바울이 귀신을 쫓아
내고 여인을 온전케 하자 여종의 주인들은 권력자들의 반유대감정을 자극하면서 바울일행이 못된
풍습을 전한다고 무고했습니다. 바울 일행은 심리도 없이 매질을 당하고 지하 감옥에 갇혔습니다.
불평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바울 일행은 감정이 행동을 지배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감정에 따라 살
지 말고 행동으로 감정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들은 지하감옥에서 죄수들과 간수들의 마음과 영혼을
울리는 찬양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지진을 일으켜 감옥의 터를 움직이셨고 모든 차꼬를 풀리게
했습니다. 찬송은 자연도, 인간의 마음도, 세상의 사슬도, 근심과 걱정과 아픔도 다 풀어지게 만듭니
다. 자결하려는 간수를 바울이 만류했고, 그가 구원의 길을 묻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다음날 바울은 시민권을 주장하면서 상관들을
압도했는데 신생 빌립보교회를 정당화하기 위한 조치였을 것입니다. 빌립보교회는 복음의 시초부
터 복음에 동참한 교회요 바울의 기쁨이 되는 교회였습니다. ▶ 이 모든 일은 바울의 계획이 아닌, 하
나님께서 이루신 것입니다. 바울은 단지 무슨 일을 만나도 긍정적으로 반응했습니다. 하나님이 만
물을 다스리시며 어려움은 변장된 축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