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가 되기를 스스로 선택한 사람
신명기 15:16-17
어느 나라나 개인이나 자유와 독립을 원합니다.
그것을 잃었을 때는 피를 흘려 쟁 취하려 합니다. 바울도 자유를 잃지 말라고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신명기는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모세가 모압평지에서 백성들을 모아 놓고 다시 한 번 율법 강해를 하는 내용입니다.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 된 공동체’를 위해서 여러 율법 조항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5장 시작부분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빠진 형제의 빚을 탕감해 주는 면제년에 대한 내용입니다.
매 7년 끝에 빚을 탕감해줌으로써 형제가 새 출발할 수 있게 해주라고 합니다.
6년을 섬기고 나면 자유롭게 방면해 주고, 빈손으로 보낼 것이 아니라 물질로 충분히 지원하라고 명령합니다.
이 일을 어렵게 여기지 말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종 되었던 애굽에서 해방되었으며,
이 일을 하는 자들에게 복을 내려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오늘 본문은 면제년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종으로 남기를 원하는 자에 대한 규정입니다.
‘스스로 노예가 되기로 선택한 사람’입니다. 인지상정(人之常情)에어긋나는 결단을 내리고 있기 때문에,
신명기는 그 사람이 자발적으로, 온전한 정신으로 그리 했다는 것을 확정하는 절차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① 그가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은 “종이 만일 너와 네 집을 사랑하여” 그리한 것입니다.
주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주인과 함께 살고 싶어서, 노예의 신분이라 할지라도 함께 머물기를 원하는 경우입니다.
주인과 함께 살 수만 있다면 자유자보다 낫다고 판단한 경우입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 보면 감옥살이 50년 만에 자유인이
된 브룩스는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감옥에 너무 익숙해져서 자유세계가 낯설어졌기때문입니다. 하지만 신명기가 소개하는 종은 예속생활에 너무 길들여졌기 때문도,
자유에 대한 갈망이 사라져서도 아니며, 주인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판단자는 이런 사정을 헤아려 주인과 주인집을 향한 사랑이 확인되면 송곳을 가져다가
그의 귀를 문에 대고 뚫습니다. 여종도 남종과 동일한 절차를 거쳐 그 집의 영원한 종이 됩니다.
이 기사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적용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종 즉 노예가 되기도 합니다.
① 신약은 예수님을 주(퀴리오스)라고 부릅니다.
② 모든 신약의 기자들은 자신을 예수님의 종, 즉 노예(둘로스)로 성격규정 짓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요한은, 베드로는, 야보고는) ….” 노예는 주인 마음대로 부리고 처분할 수 있는 재산이요,
어떤 권리도 정체성도 가질 수 없으며, 생명을 포함한 모든 권리를 주인에게 넘긴 사람이며, 출퇴근도 없고,
임금이나 근로조건을 가지고 협상할 수도 없고, 일을 마쳐도 여전히 노예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향한 기독교인의 본질 중 한 측면입니다.
③ 바울은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집트 수도 카이로 외곽 목가탐 쓰레기 마을에는 콥틱 크리스천들이 살고 있는데 이슬람사회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차별대우와
제약을 무릅쓰고 쓰레기를 처리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자녀들이 믿음의 길에서 변절할 것을 염려하여 생후 며칠 만에 손목에 십자가 표시를 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런 종류가 예수의 흔적이 아닐까 합니다.
▶ 누가복음 17:7-10에 보면 종의 본질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a) 노예는 일이 첩첩히 쌓여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b) 노예는 주인에게 고맙다는 말을 바래서는 안 됩니다.
c) 모든 것을 다 행한 후에 주인에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 영적으로 보면 모든 존재는 누군가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종, 죄의 종,탐욕의 종, 사람들의 종, ….
우리는 우리의 결단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주님께 양도할 때 온전한 종이 됩니다.